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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말기 가장, 아버지 책임 다 못하는 것이 암 투병보다 더한 고통

관리자 2019.05.07


9년째 간암투병에 체력이 소진된 김진모(56·가명) 씨는 한낮 기온이 27℃까지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에도
한겨울 점퍼를 껴입고 있다. 성일권 기자


 

김진모(56·가명) 씨는 복부 통증에 연신 얼굴을 찡그리며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초여름 날씨에도 두터운 겨울 점퍼를 껴입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9년째 이어진 간암 투병으로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한 상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마약성 진통제를 의지해 고통을 견디고 방사선 치료를 통해 전이를 늦추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80차례 넘는 방사선 치료에도 폐·임파선으로 전이
 

김 씨는 지난 2011년 간암 선고를 받은 후 지금껏 110회가 넘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암세포가 이미 간 전체와 다른 장기로 퍼질 조짐이 커 간 절제 수술과 이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피로감이 심해 병원을 찾은 것이 간암 선고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자주 피곤하기는 했지만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며 "암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런 김 씨에게는 경동맥 화학색전술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었다. 간으로 통하는 사타구니 쪽 동맥에 항암제를 투여해 암세포의 성장과 종양을 죽이는 방법이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지난 2016년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고, 지난해 5월에는 어느덧 임파선으로까지 번졌다.
 

김 씨는 "복부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 시작하는 고통이 상반신으로 올라오면서 묵직하게 변한다.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뼈마디란 뼈마디는 다 아프다. 진통제가 없으면 견딜 수가 없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생활고다. 그는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어서 의료비를 일부라도 지원받기 시작한지 2년이 채 안됐다" 며 "수년 동안 이어진 치료비 마련에 가산을 탕진하면서 건강도 놓치고 가정 역시 파탄났다"고 했다.

 

◆흩어진 가족, 가장 책임 못 진 것이 가장 미안해

김 씨는 한때 대구에서 중장비 업체를 운영하는 번듯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병을 얻어 일할 수 없게 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한 차례 700~80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를 일 년에 10 회 가까이 반복하면서 막대한 빚이 생겼다. 아파트 두 채 등 재산을 모두 팔았지만 치료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사업체는 도산하고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뇌 장애로 앉은뱅이 생활을 했던 80대 노모는 요양원으로 보냈다. 20년 넘게 어머니를 모시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요양원에 보내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적 없었지만 더는 방법이 없었다.


평소 당뇨를 앓던 부인(48)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비를 버느라 장기간 파출부로 일해오다, 지난해부터 녹내장이 심해져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할 만큼 상태가 나쁘지만, 당장 먹고 살 돈이 급하다보니 지난 1월부터 다시 파출부 일을 나섰다.
 

그는 아들 딸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주고 키운게 아직 마음에 사무친다. 특히 지난해 말 군을 전역한 아들(25)은 김 씨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도 못 시키고 사회로 내보냈다"며 "일자리를 찾아 경기도까지 갔는데 최근에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직한 상태"라고 했다.
 

김 씨는 최근 2년 간 비정기적으로 버스 정류장 옆에서 풀빵 노점상을 하기도 했다. 체력이 달려 몇 시간도 채 일을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그는 "암보다도 가장의 역할을 못하고 가족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보는게 너무 괴롭고 무기력하다"며 "조금이나마 병세가 호전돼 돈을 벌면 아이들 용돈도 주고 생활비도 보태는게 소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출처: 매일신문 이주형 기자 https://news.imaeil.com/Neighbor/2019050610270913855]